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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글쓰기

아빠의 세컨드 라이프를 응원하며, 60 퇴직 이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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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의 마흔 수업이라는 책을 읽으며 세컨드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아빠에 대해 갑자기 글을 쓰고 싶었다.

 

아빠와 엄마는 어린시절 가난했고 결혼할 때도 가난했다. 그래서 참 성실히 사셨다. 아빠는 7급 공무원으로 시작하여 최선을 다해 직장생활을 하셨고 서울 시청에서 4급 공무원으로 5년 전 퇴직하셨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교육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공무원은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은퇴 후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아빠는 정년 5년 전부터 은퇴 후 미래를 계획하고 치열하게 준비했다. 연금은 엄마한테 전부 주고 용돈 벌이하면서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직업을 원했고 그 직업을 찾기 위해 은퇴 전 여러 경험을 해봤다. 

 

1) 처음 준비했던 것은 사회복지사였는데 자격증은 취득했지만 실제 일을 해보니 생각과 많이 달라 더 이상 고려하지 않았다. 

 

2) 두번째는 아빠가 기존에 공무원 생활을 하며 관련 있던 업종의 사기업에서 고문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공무원은 퇴직 후 동종업계에서 1년간 일할 수 없기 때문에 해제되는 시점에 재취업을 고려하셨다. 

 

3) 세 번째는 택시 운전이었다. 아빠는 택시회사에서 일반 택시, 법인 택시, VIP 택시 등 다양하게 경험했는데 그 경험을 통해 개인택시가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카카오택시 블루와 같은 서비스를 사용하면 길에서 손님을 태우지 않고 AI가 최적의 동선을 짜주기 때문에 진상 손님도 상대적으로 적어 플랫폼을 이용한 개인택시로 방향을 잡았다.

 

엄마는 아빠가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조금 더 이름 있는 안정적인 곳에 재취업하기를 원했고, 아빠는 자신의 시간을 조금 더 자유롭게 활용하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택시 운전을 하고 싶어 했다. 나는 아빠가 60 넘은 나이에 명예를 위해 원하지 않는 곳에서 눈치보면서 일하기보다는 본인의 삶을 즐길 수 있는 택시 운전을 응원했다. 30년간 보여지는 삶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면 세컨드 라이프는 정말 본인이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기를 원했다. 

 

아빠는 은퇴 후 개인택시를 시작했고 처음 1~2년 동안은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4급 서기관으로 퇴직 후에 택시운전을 한다고 하면 다들 돈이 궁해서 그런일을 하냐는 식으로 면박을 주기 때문에 굳이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퇴직 후 2년이 자나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한다. 대부분 1~2년 동안은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여행을 다니며 쉬지만 그 시간이 넘어가면 아직 일할 신체적 여건이 충분한데 남의 시선 때문에 경비/택시 운전과 같은 일은 하기 싫고 또 사람을 만나자니 돈이 들고 이런 이유로 집에서만 머무르다가 금방 늙는다고 한다. 그 시점이 되면 오히려 택시 운전을 하면서 즐겁게 취미 활동을 하는 아빠를 부러워 한다고 한다. 

 

아빠는 택시 운전을 하면서 취미로 섹소폰과 시니어모델을 하고 있다. 우리 아빠는 객관적으로 봐도 굉장히 잘생겼는데 공무원으로 일할 당시는 패션센스가 정말 꽝이었다. 근데 우연히 택시 운전을 하다가 시니어모델 협회 관계자가 아빠에게 취미로 모델활동을 제안하였고 이를 계기로 계속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흔히 말하는 길거리 캐스팅이 된 것이다)

 

아빠가 시니어모델을 한다고 하면 돈을 얼마나 버는지 궁금해 하는데, 시니어모델로 돈을 버는게 아니고 오히려 돈을 쓰고 있다. 취미활동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택시 운전하면서 버는 돈을 가지고 아빠가 하고 싶은 것에 돈을 쓰며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면 너무 행복해 보이고 10년 전 사진과 비교해 보면 오히려 젊어지고 멋져졌다. 이제 사진을 찍으면 표정도 자연스러워 제법 모델처럼 보인다. 

 

아빠를 보면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아빠는 나에게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되 너무 열심히 일하면서 자신을 잃지 말라고 조언해준다. 난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너무나 잘 안다. 그리고 나도 아빠처럼 세컨드 라이프에 접어드는 시점에 내 삶을 즐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동물원 사자가 아닌 야생의 사자로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려고 한다. 

 

 

아빠의 세컨드 라이프를 응원한다. 

 

그리고 우리를 키우느라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엄마의 세컨드 라이프가 걱정된다. 엄마가 나에게 그동안 그래왔듯이, 엄마가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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